[해설] 미-중 관세전쟁, 아세안 국가들의 선택은? 베트남의 사례
[한중일 경제신문] 트럼프 미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은 사실상 미-중 간 관세전쟁으로 압축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이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에 대해 상호관세율 적용을 90일 유예한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누적관세율을 145%까지 올렸고, 중국측 또한 125%의 관세율로 이에 맞서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등의 또 다른 카드를 꺼내들며 양국간 충돌은 강대강으로 치닫고 있다.
반면 두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에 대해 이른바 자기편 만들기 전략을 구사중이다. 미국은 다른 국가들에 대해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 국가를 선택하라는 강경한 메시지를 내놓는 동시 상호관세율 적용을 90일 유예하면서 기간 동안 협상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중국은 특히 아세안 지역을 중심으로 자국의 새로운 시장가능성을 설파하면서, 다른 국가들을 끌어들이기에 주력하고 있다.
눈에 띠는 것은 아세안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의 경제는 미국과 중국, 양쪽 모두에 크게 좌우되는만큼, 선택적 강요에 대한 고민이 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양쪽 모두에 대해 원만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생존방법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4년 베트남의 명목 GDP는 아세안 국가중 4위인 4763억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동안 베트남의 대미 수출액은 1195억달러였다. 경제성장율은 전년대비 7.09%, 대미수출액은 23.17% 크게 증가한 수치다.
수치상으로 보자면, 베트남의 대미 수출액은 자국 GDP의 25%를 넘는 수치다. 베트남 경제가 얼마만큼 대미 수출에 의존적인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베트남에게 미국은 최대 수출국으로서 자국 수출의 29.4%를 차지하고 있다. 베트남 경제가 대미수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역시 중요한 교역국이다. 지난 해 베트남의 대 중국 수출액은 612억1천만달러로 미국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물론 미국에 비해서는 절반을 조금 넘는 액수이지만 역시 상당한 규모다.
같은 기간 동안 수입액은 약 1140억2천만 달러로 베트남 전체 수입액의 무려 29.95%에 달하고 있다. 단연 제 1위의 수입대상국이다. 중국으로서도 베트남으로서의 중요한 교역대상국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며칠 동안 시진핑 주석은 아세안 국가들을 순방하고 있다. 물론, 이번 관세전쟁에서 이들과의 결속여부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인다. 14일부터 양일간 베트남 방문중, 시진핑 주석은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방침에 대해 일방적 괴롭힘이라 지적하고, 향후 베트남 상품에 대한 중국의 개방정책 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베트남 언론은 양국 정상이 45개 조항의 협약에 서명했다고 보도했지만, 그 상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상호관세와 관련한 내용들이 중심일 것이라는 추측들만 나오고 있다.
정치적으로 베트남과 중국 두나라는 그리 가까운 사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방문과 관련, 베트남측은 시진핑 주석을 매우 환대하는 분위기에서 맞이한 것으로 양국 매체들은 보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측의 반발 또한 거세다. 이번 시진핑 주석의 순회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계략을 짜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심기를 드러냈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어느 한 쪽을 택하라는 극단적인 언사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시진핑 주석을 환대하고,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호간 협정이 있었다하지만, 베트남이 미국측의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 중국측과의 우호를 표시할만한 상황은 물론 아니다.
수치가 보여주듯, 베트남으로서는 대미수출이 원할하지 못할 경우 자국의 경제 자체가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중국과의 교역관계에 있어서도 구조적 취약점이 있다.
중국이 베트남의 최대 수입대상국이 된 이면에는 베트남이 중국상품에 대한 우회 수출기지로서의 역할을 한 측면이 있다. 중국상품의 대미수출이 어려워지면서, 베트남 기업들이 지역적 잇점을 이용, 중국상품을 수입해 미국에 수출하는 일이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미국으로서도 이 문제를 항상 의심하고 감시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를 의식해서였는지, 베트남 정부가 이달 들어 중국산 상품의 대미 우회수출에 대한 조사와 단속에 나섰다는 일부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중국산 제품이 베트남산으로 원산지 규정을 어기는 사례에 대해 집중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진핑 주석과의 분위기 좋은 회담과는 별개로, 필요한 조치들은 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러한 조치가 이것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회수출이 완전히 막힐 경우 자국경제에 미칠 타격이 작지 않다는 것을 베트남 정부도 잘 알고 있다.
사실 베트남측이 바라보는 중국측 시장에 대한 전망은 반드시 밝다고만은 할 수 없다. 당장 중국시장의 구매력에 대한 회의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중국 자체도 수출길이 막힌 과잉생산된 상품을 내수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해외상품을 소화할 여력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미지수다.
게다가 베트남의 대미 수출품이 대부분 섬유, 전자 등 경공업 위주로 되어 있는 만큼, 중국과의 시장관계가 보완관계라기보다는 경쟁관계라 할 수 있다. 경공업 상품의 생산여력이 여전히 생산과잉인 중국시장에 침투할 여력이 남아있을지도 미지수다.
2024년 베트남의 대미수출 흑자액은 천억달러 이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실상 대미수출액 거의 대부분이 흑자인 셈이다. 이 기간 동안 대미 수입액은 130억달러 6천만달러에 불과했다.
문제는 현재로서는 베트남이 대미 무역흑자를 줄일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베트남의 구매력 자체가 현저히 미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측의 상호관세율 계산공식은 오직 상대국에 대한 적자규모와 미국측의 수입규모만을 변수로 하는 까닭에, 무역흑자를 줄이지 않고 미국측을 달랠 방법이 마땅치 않는 것이 현실이다.
대미 무역흑자 규모를 줄이기 위한 베트남 정부차원의 노력은 물론 이어지고 있다. 보잉항공기와 LNG(액화천연가스)의 추가구매 약속, 스타링크 위성서비스의 시범운영 허용 등과 같은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차원의 노력만으로 거대규모의 무역흑자를 줄이는데는 한계가 있다. 언제까지나 지속할 수 있는 차원의 노력 또한 아니다.
지난 4월 10일 베트남은 자국의 대표단을 발빠르게 미국에 보내 협상을 시도한 바가 있다. 아울러 베트남 정부는 미국 제품에 대한 수입관세율을 0%로 낮추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측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한 상태다.
이번 미-중간 관세전쟁이 베트남으로서는 꼭 불리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이야말로 중국산 제품의 대미 수출길이 막히면 반사이익을 얻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나라 중의 하나다. 경공업 제품 위주의 베트남 수출품 중 상당수는 여전히 중국과 경쟁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90일의 유예기간 동안 미국측은 중국 이외의 국가들에 대해 10%의 관세율을 적용했는데, 베트남 기업들로서는 이 정도 관세율이면 아직은 견딜만 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눈치다. 오히려 유예기간 동안 최대한의 밀어내기 수출로, 기간 동안 사상 최대의 대미수출 규모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관세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중국을 이탈한 해외기업들이 베트남을 새로운 투자처로 찾게 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트럼프 집권 1기 중국에 대한 무역규제 당시 이미 한 차례 발생했던 전력이 있다.
당장 베트남으로서는 중국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양자택일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편한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대외관계라는 것이 늘상 그렇듯이, 베트남으로서는 미국측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면서,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요컨데, 미국측이 요구하는 것 처럼 어느 일방에 치우치는 일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동시에 이번 양국간 관세전쟁에서 자신들의 틈새이익을 최대한 챙길 수 있는 방안마련에 분주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산업구조의 고도화 등과 같은 장기적 전략을 병행해 나갈 것은 불문가지다.
비단 베트남 뿐만 아니라, 다른 아세안 국가들 역시 상황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좋든 싫던 현재 아세안 국가들이 강요받고 있는 공통의 처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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