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태 칼럼] 레몬트리와 예루살렘의 언덕

[조진태 칼럼] 레몬트리와 예루살렘의 언덕

조진태 / 전임기자

영화 레몬 트리(에란 리클리스 감독, 2008년)는 요르단 강 서안 지구의 한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통해 성경에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을 놓고 ‘증오’와 ‘폭력’이 증폭되는 현실을 은유적으로 연출해 내고 있다.

 

남편과 사별하고 대대로 물려받은 레몬 농장을 벗삼아 살고 있는 여성 살마는 이웃에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이사 오면서 날벼락을 맞게 된다. 레몬 나무가 시야를 가려 테러에 악용될 수 있다며 주변에 철책을 둘러 출입을 통제하고, 군사적인 이유에 따라 조만간 나무를 모두 베어버린다는 통보를 받은 것.

 

정작 살마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말라죽는 레몬 농장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은 파티에 사용할 레몬을 따기도 한다. 살마는 변호사를 고용, 법정 투쟁을 벌이지만 팔레스타인 원주민의 소송을 이스라엘 법정이 정의롭게 심판해 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조선인을 연상하면 그 처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서 일부 서방 및 국내 언론은 무장정파 하마스를 ‘무장 괴한’으로 표현한다. 전쟁을 촉발한 어린아이와 여성 및 민간인에 대한 잔혹한 테러 양상을 보면 ‘괴한’이라는 표현도 완곡해 보이지만, 2,000여 년만에 난데없이 유대인과 다시 얽힌 팔레스타인의 현대사 또한 잔혹하기는 마찬가지다. 

 

창세기에 따르면 함의 후손 블레셋과, 노아의 후손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살면서 각각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를 이루게 된다. 이중 유대인들은 출애굽과 바빌론 유수를 거듭하는 수난 속에서도 가나안 땅에 어렵사리 회귀했으나 서기 70년 로마제국에 멸망당한 뒤, 세계 각지로 흩어진다. 이 때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즉,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파종’된 가운데 유대 관습을 지킨다는 배타적 정체성으로 똘똘 뭉쳐 약자의 주체성을 유지한다.

 

이후 유대인은 19세기에 이르러 예루살렘의 언덕인 시온 성지로 회귀하는 ‘시오니즘’을 표방한 뒤, 세계의 금융자본을 휘두르는 막강한 경제력을 토대로 종교와 결합된 배타적 민족주의 이념을 실행에 옮긴다. 그 시발점은 1917년 영국의 아서 밸푸어 외무 장관이 유대인에게 영국의 식민지인 팔레스타인 땅에 독립 국가 수립을 약속한 ‘밸푸어 선언’.

 

이는 진정성이 전혀 없는 사기라는 사실은 팔레스타인에게도 바로 2년전 ‘맥마흔 선언’을 통해 독립을 약속한 지점에서 잘 드러난다. 영국은 두둑한 유대인의 호주머니를 노렸고, 유대인은 기꺼이 호주머니를 털어 팔레스타인 이주의 명분을 산 것이다. 어쩌면 고의적으로 범죄 국가의 장물을 사들인 셈이다.

 

여기에서부터 팔레스타인 땅이 몸살을 앓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에 대한 나치 대학살 또한 유대인의 이주 열풍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19세기 초까지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는 27만 5천명이고, 이중 유대인은 7,000 명으로 인구의 2.5%에 불과했다. 아랍인들은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믿으면서 서로 어울려 살고 있었다. 이러한 인구 및 영토 비율이 역전되는 과정은 팔레스타인에게는 한 마디로 아크바, 즉 대재앙의 과정이다. 

 

1940년대 유대인 인구는 팔레스타인의 33%로 증가했지만, 영토는 6%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주민이 거래를 통해 토지를 매입하는 형태였기에 그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을 발표하고, 1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인은 원주민에서 난민으로 처지가 바뀐다.

 

이어지는 팔레스타인 인종청소인 아크바가 거듭되면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78%를 차지, 나머지 22%인 지금의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인을 밀어 넣었다. 그나마 서안지구의 60%와 수자원 등은 이스라엘이 통제한다. 영화는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하마스의 잔혹한 테러의 양상 속에 짙게 드리운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영화를 레몬 트리 속에 담아내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낭만적인 레몬 향으로 팔레스타인의 아픔을 희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팔레스타인의 현실은 그보다 훨씬 잔혹하게 100여 년 가까이 전개되었다.

 

현실의 살마는 이미 농장을 잃고 이스라엘이 세워놓은 거대한 수용소에 갇혀 있을 것이다. 농장의 레몬은 유대의 신만이 키워냈고, 애초부터 살마는 레몬에 아무런 소유권이 없다는 한결같은 이스라엘의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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