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한강)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소년이 온다(한강)

백재선 / 전임기자

 TV에서 미얀마 국민이 군사 쿠데타 세력에 맞서 싸우는 다큐멘터리를 보니 40여 년 전 광주민주화항쟁 영상이 자꾸 떠올랐다. 광주항쟁이 한참 지난 뒤에 외국 기자가 만든 영상을 성당에서 숨을 죽이고 보면서 울분을 삼켰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듣고 광주항쟁 이야기를 담은 작가의 책 『‘소년이 온다』를 서점에서 구입했다. 책을 보다가 가슴이 미어져 그만 책을 덮어야만 했다. 소설책이라고 하지만 당시 아픔을 당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실화처럼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심 용기를 내어 책 읽기를 마쳤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분노가 치솟았다. 당시 평범한 중학생, 대학생, 여직공이 무자비한 군인들의 폭력에 맞서면서 희생당하는 과정과 그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피폐한 삶이 책 속에서 생생하게 드러나면서 마음이 너무 아렸다.

 

작가는 자신이 직접 겪었던 일처럼 일련의 상황과 그러한 상황을 맞게 된 주인공들의 내적 심리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광주항쟁 당시 민초들이 겪었던 고통을 기존의 어떤 장르 예술작품이나 문학작품에 비해 뛰어나게 서술했다.


사실 광주항쟁 관련 책은 다큐멘터리, 르포, 증언, 소설 다양한 형식으로 시중에 나와 있다. 책은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연작처럼 엮어 당시의 상황은 물론 시대적 배경과 전후를 완벽하게 다뤘다.

 

당시 평범한 중학생인 주인공 동호는 자기네 집 건넌방에서 자취하는 정대가 군인의 총을 맞아 쓰러진 이후 시신을 찾으려 다니다가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게 되었다.

 

그곳에서 대학생 진수, 여대생 선주, 여고생 은숙 등을 만나고 지내다가 결국에는 최후까지 도청에 남아 있다가 목숨을 잃는다. 민초들이 이웃과 함께하려는 소박한 연대 의식은 군인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산산이 부서지고 결국에는 자신들의 삶마저 잃고 만다.


책은 주인공들이 5.18항쟁을 전후로 개인의 일상사를 풀어쓰면서 당시의 보통 사람들이 겪은 고난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그들은 거창한 목표나 이념에 이끌려서가 아니라 주변의 이웃들이 겪은 삶에 자연스럽게 공감하면서 역사의 현장에 빠져들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밝혔지만, 자신이 어렸을 때 살았던 광주 집에 새로 이사 온 가족의 이야기를 단초로 삼아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관련자들을 직접 만나 듣고 항쟁 관련 보고서들을 샅샅이 읽고 나서 소설을 썼다. 단문 위주의 군더더기 없는 작가의 간결한 문체는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라는 인상을 줘 독자들에게 더욱 울림을 주고 있다.


미얀마 군사 독재 세력들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치를 위해 시민들을 학살한 것은 광주항쟁 당시 우리의 군부 일부 세력들이 자신들의 집권을 위해 시민들을 무차별하게 탄압한 것과 다르지 않다. 광주항쟁이 일어난 지 40년이 지났지만, 군인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어느 누구도 사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드러난 사실마저도 왜곡하려 하고 있다.


광주항쟁의 시대적 배경과 당시 참상을 가슴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에 이 책 읽기를 권하고 싶다. 물론 당시 민초들의 저항과 희생을 폭도의 행위라고 치부하려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사람들도 이 책을 읽고 당시 평범한 시민들이 겪은 고통과 아픔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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