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땅에 정의를 -함세웅 신부의 시대 증언"대담집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이땅에 정의를 -함세웅 신부의 시대 증언"대담집

백재선 / 전임기자

한인섭 교수가 묻고 함세웅 신부가 답하는 형식의 대담집은 함신부가 소신학교 입학에서부터 2012년 은퇴하기까지 함신부의 생애를 傳記처럼 보여준다.


특히 70~80년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과 궤를 같이했던 함세웅 신부의 사목 활동과 주요 행적이 그의 증언을 통해 소개되면서 당시 그가 겪은 내면의 고통과 번민도 고스란히 전해준다.


함신부는 1965년 가톨릭 본고향인 이탈리아에 건너가 그곳에서 사제 서품과 박사 학위를 받고 1973년 귀국했다. 이탈리아 유학 때 가톨릭교회 개혁과 사회적 사명을 중시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를 직접 체험한 함신부는 귀국해서 공의회 내용에 입각한 성경 해석을 바탕으로 사목 활동에 펼치기 시작했다.


그가 국내에서 사목 활동에 나선 시기는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을 만들고 강압 정치에 나섰던 암울한 시대였다. 함신부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 여파로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자 뜻있는 젊은 신부들을 모아 정의구현사제단을 결성하여 사제로서 사회 참여를 본격 시작하게 되었다.

 


함신부는 박정희 전두환 군부 독재 정권하에서 세 차례나 구속되는 탄압을 받았지만 정의사회 구현을 사목활동의 목표이자 시대의 징표로 삼아 가톨릭 교계가 민주화라는 역사적 흐름에 동참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함신부를 비롯한 정의구현사제단은 1987년 서슬이 퍼런 전두환 정권하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폭로하면서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앞당기는 6월 항쟁의 물꼬를 트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담집에서 함신부가 어려운 시기에 공의회 사목 헌장과 해방신학 교리를 바탕으로 반독재 투쟁과 민주화 운동에 헌신함으로써 죽은 신앙이 아니라 살아있는 신앙의 삶을 보여주지만, 한국 천주교의 부끄러운 일면도 그대로 드러난다.

 

보수 일색의 천주교 원로 신부들은 젊은 신부들의 정의구현사제단 활동에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함신부의 증언에서 전두환 정권하에서 국보위 위원으로 활동한 가톨릭 신부도 있었던 것도 드러나지만 당시의 교계 지도자들은 젊은 신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주 어깃장을 냈다.

 

우리나라 천주교는 230여 년 전 젊은 성리학자들이 西學을 접하면서 자발적으로 도입되었지만 100년에 걸쳐 혹독한 박해를 겪고 1만여 명의 신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 여파로 교회 지도자들이 정교분리 정책을 내세워 일제 강점기에는 신자들에게 일제의 침략 전쟁에 참여하고 신사에 참배하기를 권고했던 흑역사를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해 2019년 기미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국천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광주대교구장은 기념 담화를 통해 3.1운동 당시 역사의 현장에서 천주교회가 제구실을 다 하지 못했음을 사과한 것은 시사한 바 크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70ㆍ80년대 민주화 시대를 이끌면서 일제 강점기부터 굳어져 온 보수적인 교계 분위기를 일신시켰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사제단이 시국사건 때마다 목소리를 내자 천주교 일부 원로 신부들과 교황대사도 반발했다. 심지어 보수언론까지 이에 가세해 정의구현사제단이 비공인 단체라는 점을 들고 현재까지도 비난을 일삼고 있다.


이에 대해 함신부는 신학 교수 관점에서 바티칸이나 교구 등 교회 조직은 예수님이 직접 세운 것이 아니라는 논거를 들어 가톨릭 내 경직된 관료 체제를 비판했다. 비판의 화살은 가톨릭 수장인 교황을 겨냥하기도 했다. 1984년 전두환 정권 때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맞아 광주까지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광주항쟁에 대해 구체적인 메시지를 내놓지 않은 점을 용기 있게 지적했다.

 

함신부는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김수환 추기경이 말년에 젊은 신부들을 배척하고 시대 흐름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점도 솔직하게 터놓았다. 그러나 함신부는 6월 항쟁 당시 김수환 추기경이 불의한 정권과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게 견디면서 교계를 이끌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고 말년에 추기경을 자주 뵙지 못한 자신의 오만함을 반성하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천주교의 수장인 정진석 추기경에 대해서도 함신부의 비판은 계속 이어졌다. 주교회의에서 4대강에 대한 문제점을 공식적으로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진석 추기경이 기자들 앞에서 이를 부인하자 정의구현사제단이 크게 반발했다. 사제단의 이러한 반발에 대해 정추기경은 하극상이라면서 바티칸에 고소하는 진풍경이 빚어지기도 했다.

 

교계 인사들에 대한 함신부의 냉엄한 비판은 엄격한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천주교회 분위기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그냥 묻어버릴 수 있는 사실들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후세 사람들이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준 셈이다.

 

이에 대해 한교수는 “함신부의 삶은 한 개인의 삶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삶이고 우리 시대의 변화에 기여한 그러한 삶”이라면서 “함신부의 그러한 삶은 동시대의 다른 이들에게 하나의 교훈 내지 교재로 활용되어야한다”고 강조한다.

 

한교수는 대담집을 마무리하면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일독을 권한다.

 

“불의에 시대에 정의는 무엇인가. 비인간화가 판치는 시대에 인간다움을 위한 노력이란 무엇인가. 무지의 시대에 지혜로운 삶은 무엇인가. 아집과 편견으로 가두어놓은 자신의 동굴과 담벽을 허물어 사랑으로 함께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함께 천천히 풀어가는 즐거운 독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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