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 관련 책 읽기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순자 관련 책 읽기

백재선 / 전임기자

중고등학교 때 맹자가 성선설을, 순자가 성악설을 주창했다고 배웠다. 성선설의 맹자가 성악설의 순자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자연스럽게 인식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세상사를 단순히 선과 악 이분법으로 나눠 판단하는 것이 피곤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그동안 오랫동안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조선 유학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적통이 아니라고 하는 순자 유학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고대 중국 제자백가 관련 책을 읽다 보니 순자가 돋보여 순자에 관한 책을 읽었다.

 

최근에 읽은 순자 관련 책들은 우치야마 도시히코의 순자 교양 강의, 장현근의 순자, 임건순의 순자3권이다.

 

교토대학 우치야마 도시히코 명예교수는 순자의 생애와 사상 전모를 다루면서 거시적 안목으로 순자가 보여준 언설과 행적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용인대 장현근 교수는 순자가 제시한 사상을 키워드 중심으로 분석하고 원문을 직접 인용하면서 인용 구절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자세히 알려준다.

 

동양 철학자 임건순은 순자와 가상 인터뷰를 통해 순자의 사상을 쉽게 풀이하면서 교육자, 역사가, 시장주의자, 사회학자라는 시각에서 순자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순자 [사진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Xun_Zi_crop.png#/media/파일:Xun_Zi_crop.png ]

 

 

오랜 기간 순자 연구에 공을 들여온 저자들의 책이라 그동안 성악설을 제창했다는 이유로 맹자에게 저평가되어 온 순자의 진면목과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저자들은 무엇보다 순자가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공학의 적통자라는 점과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사상을 집대성했다는 점에 대해 대체로 의견을 같이한다.

  

이들은 순자가 예와 정명을 통해 치국의 원리를 설파하고 공자처럼 학문을 좋아하면서도 실천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공자의 정통 후계자라고 높게 평가한다.

 

또한 순자는 공학의 맹자는 물론 노자, 장자, 묵자 등 다른 유파 사상가들의 주장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그들의 사상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제자백가의 학문을 결집시켰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순자가 군주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그의 사상이 군주가 일방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치세의 도구로 활용되었으며 실제 그의 제자들인 이사나 한비자가 전제 군주를 떠받쳤다는 점을 들어 비판을 받기도 한다.

 

후세의 유학자들은 맹자를 아성으로 옹립하고 공자의 적통으로 내세웠다. 송나라 주희를 비롯하여 주자학자들은 그들이 추종하는 맹자의 사상과 대립하는 인물인 순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심지어 순자의 사상을 사문난적이라고 격하시켰다.

 

주자학자들은 순자가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 긍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태어나면서 악한 존재로 본 나쁜 사람으로 날인을 찍었다. 그들은 또한 순자가 왕도뿐만 아니라 패도를 긍정했다는 점을 들어 도덕이 아닌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했다는 오명을 씌웠다.

 

순자에 대한 주자학자들의 매도는 조선의 성리학자들에게까지 이어져 조선에서는 오랫동안 순자 책은 금서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주자학은 중국에서 이백 년 정도 명맥을 유지했으나 조선에서는 무려 500년 동안 통치의 원리로 작용해오면서 순자는 더욱 핍박을 받아왔다.

 

그러나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형성했던 율곡이 순자가 제창한 예치론에 입각한 왕도 건설을 역시 주창했다는 점에서 율곡 이후 그의 제자들인 서인과 노론 세력 유학자들이 맹자만 숭상하고 순자를 애써 무시하려 했는지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맹자나 순자 모두 공자를 열심히 추종했고 자기 나름대로의 주장을 내세웠지만 그들의 논리는 공자의 사유 체계에 크게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비판하고 보완하면서 유학의 사유 체계를 확충하는데 기여했다.

 

송나라 주자학자들과 조선 사대부들이 주자를 따르지 않는 자를 모두 사문난적이라고 매도한 것은 결국 학문의 왜곡이자 도그마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과거나 지금이나 생각의 차이를 이단으로 몰아치고 공격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이익 도모를 위한 독선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이론이나 관념을 내세우는 학계나 정계에서 생각의 차이를 더욱 인정하지 않는 세태가 팽배하지만 이들 분야야말로 유연하고 실용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순자의 열린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

 

순자가 예의 왕국 수립을 위해 사회적으로 질서 있고 치밀한 분업 체계 구축을 주창해 개인을 질식도록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지만, 개인적으로 순자에게 배울 점은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그의 학문하는 자세이다.

 

고대 시대 모두가 하늘을 경외하고 천명을 중시하는 상황에서도 순자는 하늘을 객체화된 자연으로 부고 하늘의 주체성과 절대성을 부인하면서 오히려 하늘에 대한 인간의 이용과 제어를 주장함으로써 인간의 능동성과 주체성을 강조했다.

 

순자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깊은 믿음을 가졌고 사회질서를 중시하면서도 개인의 수양과 성찰을 강조했던 인문주의자였다.

 

순자는 학자로서 유가 경전에 대한 체득을 바탕에 깔고 제자백가의 책을 비판적으로 독해하여 학문적 일가를 이뤄 한나라 경학의 기초가 되는 유학 경전을 후세에 전수했다.

 

그는 특히 학문의 엄밀성과 체계, 짜임새 있는 문장과 텍스트를 중시하면서도 끊임없는 실천을 강조하여 오늘날까지 후학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학문의 개념과 목표, 학문하는 자세에 대한 순자의 언급은 현시점에서도 귀담아들어야 할 훌륭한 교훈이다.

 

학문은 더딘 것이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저 멀리서 목표도 날 기다립니다, 그러니 나아가야 합니다. 누구는 늦고, 누구는 빠르고, 누구는 앞서, 누구는 뒤처지겠지만, 어찌 그 목표에 함께 도달하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그러므로 쉬지 않고 반걸음씩 걸으면 절름발이 자라라 하더라도 천리를 갈 수 있습니다(순자 수신편-임건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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