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백재선 / 전임기자

동양 철학자 강신주가 기존에 펴낸 노자·장자 철학 관련 책을 한꺼번에 엮어 단행본으로 발간한 책이다.


노자와 장자를 다룬 두 권의 책을 한 권으로 묶게 된 이유에 대해 저자는 “장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노자를 먼저 이해해야 하고, 반대로 노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장자 이해가 선결되어야 한다.” 고 밝혔다.

 

기존의 해설서들이 대부분 노자와 장자를 묶어 老莊思想이라는 큰 틀에서 보고 있으나 강신주는 이러한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단행본을 통해 노자와 장자의 차이점을 오히려 분명히 드러낸다.

 

후대 사람들이 노자와 장자를 묶어 道家 학파로 분류하고 있으나 저자는 노자와 장자의 사유 체계는 동일하지 않고 크게 다르다고 강조한다.

 

노자가 군주와 국가를 위한 철학자였다면 장자는 단독적인 객체와 삶을 위한 철학자였다는 점에서 노자와 장자가 추구했던 지향점과 시선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노자의 道는 만물과는 무관하게 미리 존재하며 위계관계 하에서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초월의 길에서 도를 추구해야 한다. 반면 장자의 道는 미리 존재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것으로 세상의 모든 존재와 대등한 관계를 맺으며 살려고 하는 내재의 길에서 도를 찾아야 한다.

 

저자는 1부 <노자의 철학> 편에서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이라는 주제로 노자 철학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노자 철학의 요체는 무엇보다 수탈과 재분배라는 국가 운영 논리가 교묘히 숨어든 왕들을 위한 제왕학이나 정치철학으로 본다.

 

노자에게 도는 우리와 무관하게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수탈과 재분배의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국가 운용의 비밀로 인식되고 있으며, 노자가 통치자에게 권고하는 도에는 원초적 수탈과 폭력 즉 원초적 불평등의 상태가 전제되어 있다.

 

노자는 국가란 기본적으로 통치자(군주)와 피통치자(민중)로 양분되는 위계적 체계이고, 통치자와 피통치 간 사이에는 교환관계가 성립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노자의 無爲 政治는 수탈과 재분배라는 교환관계가 활성화되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수탈을 즐겁게 감내하는 상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저자는 “무위 정치는 피통치자의 자발적인 복종을 유도하고 피통치자가 자신이 수탈의 대상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그 수탈을 외적인 결정과 의지로부터가 아닌 내적인 의지와 결정으로 수용하는 것처럼 느낄 때 파시즘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노자 철학의 위험성을 폭로한다.

 

책에서는 노자의 국가 운영 원리가 형이상학적 논리로 과도하게 해석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노자의 주석서와 해설서들이 대부분 노자를 국가의 관점이 아니라 개인의 관점에서 조망함으로써 노자를 형이상학이나 형이상학적 수양론으로 변질시켰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자의 수양론은 기본적으로 통치자를 위한 수양론으로 통치자가 자신의 자리를 영구히 유지하기 위한 수양론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수양은 구체적인 삶 속에서 실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관점으로 볼 때 수양을 타자와의 소통과 그로부터 말미암은 주체의 자기 변형으로 사유하고 있는 장자를 저자는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한다.

 

저자는 2부 <장자의 철학> 편에서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이라는 주제로 장자 철학을 다룬다. 장자에 대한 저자의 평가도 기존의 주류 해석과 큰 차이를 드러낸다.

 

기존 해설서들이 대부분 장자에 대해 심미적이거나 정신적인 자유를 추구한 내면에 충실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나 저자는 타자와의 소통을 추구하려 했던 열린 사상가라는 점을 오히려 강조한다.

 

장자에게 도란 어떤 주체가 타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타자에 맞게 자신의 주체 형식을 부단히 재조정해서 변형시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장자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을 작동시키는 특정한 誠心을 표준으로 삼는 고착된 자의식이었고, 장자가 자의식을 버린 虛心을 강조한 이유는 마음으로 하여금 타자와 잘 소통해서 새로운 삶의 문맥을 잘 비추어 내려는 데 있었다.

 

장자가 달성하고자 했던 비인청 실존 상태인 虛心은 인칭적 자의식뿐만 아니라 대상 의식마저도 제거된 유동적 상태임을 의미한다.


저자는 “장자야말로 타자와의 소통을 중요시하고 소통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을 사유했으며, 나아가 이런 소통을 몸소 실천하려고 했던 철학자였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동서양 철학의 차이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상대적으로 장자 철학의 우수성을 언급한다.


서양 철학자인 데리다는 개인의 동일성을 해체하기 위해 차이를 언급하지만 결국에는 차이를 넘어설 수 없는 존재라고 인식했던 반면에 장자는 차이의 체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으로 사유했다.


서양에서는 사유와 존재의 일치를 진리라고 여기고 사유와 존재의 일치는 사실 주체와 타자의 일치라는 근본적인 경험을 전제로 해서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동양에서는 도를 진리하고 여기며, 도는 미리 존재하는 어떤 진리가 아니라 타자와 조우하고 소통함으로써 드러나는 무엇으로 주체와 타자가 소통하는 데서 생성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자의 도는 미리 존재해서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꾸역꾸역 걸어가서 만드는 흔적과도 같은 것으로 장자가 우리에게 권고했던 치열한 자기 수양은 타자와 소통하려는 열망에 종속된 것으로 봐야 한다.


궁극적으로 동양 철학의 수양론은 자신의 마음을 변형시키고 결국 변형된 마음으로 타자들과의 조화와 소통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장자 수양론의 취지는 기본적으로 주체가 차지하고 있는 주인의 자리를 타자를 위해 비우는 데 있다”면서 “장자가 권하는 타자와의 소통은 편안한 것과 거리가 먼 것으로 그것은 목숨을 건 비약과 가까운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장자 철학이 품고 있는 자유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는 주체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주체 형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 있으며, 이런 주체 형식의 변화는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장자는 사유했다.


그래서 장자가 생각하는 자유는 심미적이거나 정신적인 자유일 수는 없고 오히려 대상이나 주체를 미리 규정하지 않는, 즉 無蓋적이고 非人稱적인 마음에서 존재하는 타자와의 새로운 소통 관계의 구성에 있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저자는 “철학은 기존의 삶의 형식에 대한 비판과 수양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주체가 타자를 거듭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의미체계를 우리에게 던져주었을 때만 의미가 있다“고 밝히면서 ”철학자로 삶의 태도를 결정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결단 체계나 구조의 힘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를 추구한 장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자와 장자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기존 주석들과 결을 달리해 참신하다.


특히 노자를 제왕학으로 본 저자의 견해는 새로운 해석은 아니지만, 마르크스의 이론까지 활용하여 파시즘으로 흘러갈 위험성을 경고한 것은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노자에 대한 담론은 대체로 무위와 관조라는 동양적 사상의 근거를 이룬 도가의 대부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마르크스 논리를 활용하여 국가 교환의 논리인 도는 수탈과 재분배는 기본적으로 부등가 교환이지만 등가교환으로 현상하면서 잉여가치를 남기는 오늘날의 자본 교환 논리와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장자에 대한 저자의 평가도 기존의 해석과 크게 벗어난다.


대붕(大鵬)과 소요유(逍遙遊)를 이야기하는 장자를 개인주의 세계와 정신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상가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장자가 개인 주체가 아닌 타인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철학자로 평가한 저자의 견해는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나니 고전을 읽는 데 있어 무조건 과거 선학자들이 연구한 주석을 따를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의 삶과 관련해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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