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역평/조명화』을 읽고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논어 역평/조명화』을 읽고

백재선 / 전임기자
오랜만에 논어에 대해 풍부한 해석과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준 책을 읽었다.

중문학자인 조명화 서원대 교수가 저술한 『논어 역평』은 동서양 학자의 논어 주석을 비교 평가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나름대로 제시해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중국 宋나라 유학자 정이·주희에서 당대의 이택후(李澤厚)까지, 조선의 정약용, 일본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이토 진사이· 오규 소라이, 서양의 H.G 크릴·벤저민 슈워츠 등 동서고금 학자들의 논어 주석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교 평가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시중에 나온 책들이 대부분 공자를 성인이나 인류의 사표 반열로 놓고 논어를 해석해 다소 식상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저자는 이러한 흐름에 반하는 다양한 주석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공자가 고대 세습 귀족 체제 유지를 위한 논리를 만들었다고 보는 『논어신탐-반논어』 저자인 중국의 마르크스 계열 고전역사학자인 조기빈(趙己彬)의 논어 해석에 동조한다.

저자도 “공자가 士人으로 사회 지도층에 오르려는 열망을 갖고 귀족 사회의 질서 안정을 중시했다”면서 “공자가 설파했던 仁은 지배계층에 필요한 덕목으로 여겼지, 피지배층까지 포함하는 보편적인 덕목으로 여기지 않았음을 들어 공자를 보편적인 휴머니스트로 보고자 하는 견해는 오류”라고 과감히 주장한다.

저자는 공자의 신격화나 유교의 종교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과 의견을 같이한다.

일본의 중국 고전 연구가인 아사노 유이치는 『공자 신화』라는 책을 통해 유가의 시조인 공자의 일생을 통해 유교가 어떤 종교적 특징을 갖고 후세의 제자들에 의해 종교로 형성되는 과정을 상세히 서술했다.

저자는 아사노 유이치의 분석대로“공자의 삶은 원한으로 가득한 종교적 신비주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평생에 걸쳐 입신양명의 꿈을 꾼 공자의 좌절과 분노를 후세의 제자들이 무관의 제왕인 素王으로 등극시키는 과정에서 허위와 왜곡으로 가득 찬 공자 신화가 꾸며지게 되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또한 朱子를 정점으로 한 宋나라 유학자들이 理를 내세워 논어를 교조적으로 해석한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다.

송나라 유학자들은 공자 생각의 핵심이 안정적인 질서 유지임을 간파하고 인간 세계의 질서를 우주의 질서와 연결시키려는 추상적인 이념인 性理學을 만들면서 공자를 맹목적으로 받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宋儒들은 자기의 시대 상황에서 갖게 된 무의식적인 심리와 논어에서 볼 수 있는 공자의 심리가 일치해 성리학을 집권층의 도그마로 만드는데 열정을 쏟았다”고 비판한다.

이와 관련해 “宋代 유학을 집대성한 朱子가 공자를 맹목적으로 높이기만 해서 도저히 눈이 열려 있는 작가로 볼 수 없다”고 혹평한다.

논어 주석을 놓고 중국학자들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당대 학자까지 이어진다.

중국 현대 미학 철학의 대가인 리쩌허우(李澤厚)가 중국 전통문화의 정수로 꼽고 있는 정교 합일론, 실용 이성, 중체서용, 정본체론에 입각해서 논어를 해석한 것에 대해서도 서구적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왜곡된 측면이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를테면 리쩌허우는 “공자 문하의 인류학이란 사변철학이 아니고 논리적 일관성을 갖추지 않는 대신 행위와 실천을 중시하고 정과 성을 함양하는 데 뜻을 두었다”면서 중국인의 문화적 특징을 情과 실용 이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중국인은 구체적인 사물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사물의 효용과 향유를 추구하는 것을 중시했기 때문에 이성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중국 문화를 설명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 ”실용 이성이라는 것은 이성이 아닌 감정의 영역들이며, 실리를 이성이라는 말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저자는 책에서 공자의 유산인 논어가 후세에 유교의 논리로 이데올로기화된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문화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들을 언급한다.

질서 유지를 위해 개인을 억제하는 한편 忠·孝를 통한 서열화를 중시하고, 타민족을 차별하고 자국민만을 중시하는 華夷觀을 유지하고, 名과 實을 달리하면서 오히려 체면과 구호를 중요시하는 중국인들의 습성은 유교의 부정적인 유산에 해당한다.

특히 중국인들이 높이 여기고 있는 中庸 사상도 이성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실리를 따지는 계산에 의한 태도에 불과한 것으로 권력자들이 사회 조화를 위해 개인들에게 이를 강요함으로써 오히려 개인의 창조력과 가치를 제한하는 통치 기제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공자를 신격화나 우상화를 통해 맹목적으로 높이려는 것에서 벗어나 가급적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 공자를 평가한다.

저자는 “공자는 상황마다 그때그때 단편적으로 발언했고 원래 문제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학문으로서의 철학이라고 일컬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공자는 부당한 권력이나 공포와 맞선 적이 없었으나 사람들의 본성을 잘 파악하여 정치적 의제들을 장악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고 제자들을 모아서 가르치는 실천을 통해 고전을 보전하고 제자백가의 단초를 열었다는 점에서 문화사적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공자의 말은 공자가 살았던 시대의 관념에서 보아야 하고 이 시대의 눈으로 공자를 보더라도 그 시대의 공자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한문 해독 능력과 함께 유교에 대한 소양을 바탕으로 비평의 안목을 갖춰 현대 한국어판 논어 정본을 만들어야 한다는 각오로 책을 발간했다“고 밝히면서 ”이를 위해 자의적 해석과 도그마를 경계하고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어법이나 문자학적 해석에 구속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평설 원칙을 제시했다.

저자의 저술 의도와 원칙에 충분히 공감하나 한문 해독 능력이 떨어지고 유교를 제대로 알지 못한 일반인들은 논어와 공자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증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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