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 관련책을 읽고
공자에 관한 책을 읽다 보니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사상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제자백가 관련 책으로 산동준 교수의 『제자백가 사상을 논하다 1ㆍ2권』, 정용선 박사의 『장자, 제자백가를 소요하다』, 동양철학자 임건순 작가의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을 읽었다.
제자백가 사상은 어느 정도 범주화되어 읽지만, 저자들의 관점에 따라 다각적이고 교차적인 시각으로 읽을 수 있었다.
제자백가 사상에 대해 신동준 교수는 수제(修齊)와 치평(治平)이라는 측면에서, 정용선 박사는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라는 측면에서, 임건순 작가는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이라는 측면에서 각각 구분해 분석한다.
신동준 교수는 수제에 치중한 맹자는 이상주의를 강화했다는 점을 들어 공자 좌파로, 치평에 치중한 한비자는 현실주의를 강화했다는 점을 들어 공자 우파라고 분류한다.
신교수는 공자는 결코 수제만으로 치평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면서 공자가 말한 성인과 군자는 전적으로 학문을 닦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이룰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공자의 적통으로 맹자 대신 순자를 꼽는다.
순자는 공자의 수제와 치평의 사상을 균형 있게 따랐을 뿐만 아니라 도가의 무위 사상과 법가의 법치 사상을 받아들여 禮治 사상을 완성함으로써 제자백가 사상을 집대성했다고 순자를 높게 평가한다.
공자는 치평의 요체를 君子之道에 입각한 학문의 연마에서 찾았지만, 맹자는 인격 수양을 통한 善性의 발현에서만 찾고자 하는 데에서 왜곡을 가져왔다.
공자 이후 후대 유학자들이 삶의 실체를 거의 무시한 채 맹자의 성선설에 입각한 성리학을 기반으로 삼은 유가 경전만을 극도로 존중한 것은 결국 공자학의 기본 취지와 배치된 것이다.
신교수는 맹자의 성선설과 성리학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맹자의 성선설은 치평의 논리보다는 인간의 선성을 밝게 드러내는 '수제'의 논리에 함몰되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공론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도덕적인 측면의 수양만 강조했지 지적인 영역에 대한 분발을 촉구한 내용은 거의 없어 오히려 학문을 경시하는 왜곡된 풍조를 낳았다.
신교수는 노자 사상을 장자 사상과 하나로 묶어 도가사상으로 분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언급한다.
장자 사상은 出世間에 있지만, 노자 사상은 入世間과 출세간의 경계에 머물고 있고, 결코 출세간으로 빠져나가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장자와 노자 간의 차이를 분명히 했다.
노자가 설정한 최상의 통치는 만물을 포용하고 공평하기 그지없는 통치를 펼치는 至平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혼란스러운 통치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공자의 治平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임건순 동양철학자는 제자백가 사상을 성선설과 성악설 관점에서 구분하여 맹자와 공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상가들은 모두 성악설론자들로 분류한다.
전국시대 씨족 공동체의 해체로 새롭게 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인성론과 본성론이 제자백가의 담론이 되었다. 대내외적으로 투쟁이 더욱 격화되자 결국 성악설이 주류 담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맹자는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무시하고 오로지 인간만이 가진 특질이자 본질인 善性에만 주목하고 크게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性善說론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노자와 장자를 제외한 모든 성악설론자들은 감정과 욕망, 특히 욕망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인정했고 어떻게 하면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다툼과 갈등 없이 욕망을 누리게 해볼까를 고민했고 사회적 자원을 무슨 기준으로 분배할 것인가 고민했다.
성악설론자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합리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해 명확한 제도와 법과 기준을 제시하는 데 앞장섰다. 또한 군주가 제도와 규범으로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성악설은 궁극적으로 국가와 군주 중심의 사상체계로 귀결되었으며 전국시대 상앙ㆍ한비자ㆍ묵자ㆍ순자가 모두 군주의 입장에서 공동체 통치원리를 설파했다.
순자는 인간 자체의 타고난 본성이 악한 것이 아니라 욕망을 가진 인간이 모인 사회가 혼란스럽다는 것을 악으로 인식했다.
순자는 인간이 욕망을 가졌지만, 예의 준수와 실천을 통해 지속적으로 만족하는 과정을 밟아 가면 변화될 수 있다고 보고 인간 본성의 긍정성을 오히려 확신했다.
임작가는 성선설의 요체인 맹자의 인성론 비판에 지면을 많이 할애한다.
맹자의 성선설은 도덕적 본성을 키운 키울 수 있는 사람은 소수 지식인이고 이들이 결국 지식인이 정치적 사회적 권력과 경제적 권력까지 손에 거머쥐어 세상을 다스려가야 한다는 일종의 정치적인 선동이라고 할 수 있다.
대인이 늘 대접받고 권력을 가진 채 세상을 이끌어야 하고 백성이 항산(恒産)을 가질 수 있도록 왕도정치를 베풀라는 맹자의 주장에서도 차별적인 인간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맹자의 성선설은 지식인-정치인-지주 삼위일체의 정치사상이며, 유교적 교양을 갖춘 자들의 권력 독과점을 옹호하는 이론에 불과하다.
송대 사대부들은 왕 중심의 철학과 명확한 공적 규범을 주장하는 순자보다 지식인의 자율성 기득권을 말하는 맹자의 철학을 옹호하면서 맹자를 공자의 적통으로 내세우게 된 것이다.
정용선 박사는 무위와 유위의 개념에서 제자백가 사상을 구분한다.
철기 시대 도래는 정치나 권력의 중심이 되는 고대국가가 출현할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되면서 인류 사유의 관점은 자연 혹은 신(무위의 개념)에서 인간 혹은 인간다운 삶(유위의 개념)으로 옮겨갔다.
중국 중원에서는 西夏의 실제적인 문화(유위)가 東夷의 종교적 문화(무위)를 밀치고 주류 문화로 바뀌는 상황에서 공자는 혼란을 치유하기 위한 해법으로 무위적 사유와 유위적 사유가 균형을 이루는 중용사상을 펼쳤다.
중용이란 양쪽의 끝의 중간 지점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저울처럼 양쪽의 균형을 잡는 것이다.
중용을 강조하는 공자를 기준으로 볼 때 무위 쪽으로 한 걸음 나간 맹자, 맹자와 반대편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나간 순자, 무위의 방향으로 맹자보다 한 걸음 더 나간 노자, 유위의 방향으로 순자보다 한 걸음 더 나간 한비자로 분류할 수 있다.
중국 고대 철학의 사유의 지형도를 보면 공자가 이상과 현실의 중용을 추구한다면 맹자와 노자는 이상주의적 세상 읽기, 순자와 한비자는 현실적 실용적 세상 읽기의 지평으로 분기될 수 있다
공자에게 있어 무위적 사유는 모든 인간이 보이지 않게 仁으로 이어져 있고 유위적 사유는 분별을 중시하는 知로 구분된다. 인간에게는 仁과 知 두 요소의 중용이 필요하고. 知의 분별이 사회적으로 표현된 것이 禮라고 할 수 있다.
순자가 공자의 이 같은 예법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순자가 공자를 계승한 적자로 봐야 한다고 정박사는 주장한다.
특히 순자의 道는 사회적 실리를 보장해주는 실용의 예법으로 사회적 구분을 지키고 욕망을 잘 조절하도록 사회를 관리하는 군자의 至平 사회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공자의 君子學과도 맞아서 떨어진다.
정박사도 인간의 본성을 놓고 맹자보다 순자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면서 맹자의 성선설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드러낸다.
인간은 마음을 가진 존재이고, 그 마음을 물질이 아닌 정신 속에서 실현된다는 맹자의 관점은 실용주의나 실제적 사유와는 거리가 먼 이상주의적ㆍ관념적ㆍ도덕주의적 가치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맹자는 부조리하고 깨어진 세상을 좀 더 의미 있고 이상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한 고결한 정신을 지닌 종교적 성결주의자지만 이상주의 아름다움에만 도취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도덕 중심주의로 흘러 결국 균형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정박사는 중국 사상가들이 대부분 사회철학이나 정치학 요소가 강하지만 장자 사상이야말로 가장 철학에 접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제자백가 사상가들이 天人合一이든 天人分離이든 천과 인의 관계를 분리해야 성립 가능한 지향이고, 유위ㆍ무위 두 사유 체계 역시 이분법적 사유에 기초해서 사상을 전개하고 있으나 이 같은 이분법 틀에서 확실히 벗어나 있는 사유를 제시한 것이 장자라고 할 수 있다.
장자는 텍스트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 했고 인간과 자연을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된 하나로 보면서 인간이 만든 어떤 빈천과 오욕, 부귀와 영화에도 메이지 않고 자신의 뜻에 따라 즐겁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또한 장자는 단지 세상에 대한 해석에 기초하여 어떤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여러 해석과 주장이 과연 타당한가를 여러 각도에서 검토하고서 어떤 가치에도 매이지 않으면서 인간의 실존적 삶에 대해 성찰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제자백가 중 철학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제자백가 관련 책들을 읽고 느낀 점은 모든 사상이 시대적 요구에 따라 시작되고 일견 다른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서로 보완이 이뤄졌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국시대 씨족 공동체의 해체로 투쟁이 격화되면서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선설, 묵자의 겸애설이 등장했다.
순자와 묵자는 사회 질서 수립을 위해 누구보다도 공동체의 규범 수립에 관심을 나타냈다. 한비자는 법 제정을 통해 인간을 규율하려 했다. 노자와 장자는 혼탁한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동체적인 측면보다 인간 내면에 보다 관심을 갖고 자연에 귀의하려고 권고했다.
전국시대 제자백가 사상은 결국 공자에게서 시작되어 공자로 돌아간다. 공자가 제기한 天 人 性 命 心 道 德 義는 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의 담론이 되었다.
제자백가들은 모두 공자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누구는 그의 뒤를 이어 계승하려 했고 누구는 그의 사상을 비판하며 자신의 사상을 세우려 했다.
제자백가들이 2천5백년 제시한 개념과 관념들은 동양권 사회를 중심으로 여전히 중요한 화두로 남아있는 가운데 공자가 남기고자 했던 핵심 가치를 잘 새겨봐야 할 것 같다.
이번에 제자백가 책을 읽고 나서 개인적으로 깊게 생각해 보게 된 것은 공자의 中庸사상이다.
중국 고대 사상을 보수와 진보 또는 유위와 무위라는 측면을 놓고 볼 때 공자의 중용사상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아주는 저울추 역할을 해주고 있다.
중국인들의 중용사상은 이성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실리를 따지는 중국인 특유의 계산에 의한 태도에 의한 것이라는 일부의 비판에 일리가 있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공자의 중용사상은 당시에 사회 질서 유지와 안정, 개인 간의 조화를 위해 필요한 원칙이었고 이러한 원칙은 오랜 역사와 문화 속에 축적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중용사상은 중국뿐만 아니라 동양권 나아가 서양권을 포함한 전 인류 사회에서 지켜져야 할 원칙이자 덕목이 되었다.
사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정치권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극단의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 모두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제대로 보지 않고 도덕론자가 되어 남을 비판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이나 우리 사회에서 유교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유교의 부활은 공자 이후 탈색된 유교가 아니라 공자가 원래 추구하려 했던 가치를 지금 시점에서 되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유교의 전통으로 삼강오륜, 충효사상, 선비사상 등이 남아있지만 가장 절실한 것은 개인들이 공자의 중용사상에 입각해 매사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자백가 관련 전문가들의 책을 읽고 나니 공자 이후 유가의 적통자는 맹자라기보다는 순자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修齊(修身)만 중시하는 맹자와 달리 수제와 治國을 동시에 중시한 순자가 공자의 적통이라는 신동준 교수의 주장에 수긍이 간다. 실용적 예법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조절하여 사회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순자의 사상이 공자 사상을 계승한 것이라는 정용선 박사의 견해도 공감한다.
맹자의 성선설이 후대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과 유산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적도 십분 공감한다. 맹자의 성선설은 후대 성리학을 통해 맹목적인 도덕 과잉주의와 사대부 독선주의라는 병폐를 가져왔다.
조선이 성리학을 기반으로 체제를 구축한 이후 사대부와 재야 사림 세력의 득세와 대립으로 왕정 위축과 함께 국가 위기라는 쇠퇴의 길로 들어갔다. 조선 유학이 주자 이후 성리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점이 있지만, 사대부와 사림이 후대에 끼친 부정적인 유산에 대해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제자백가 중 가장 공부하고 싶은 사상가는 장자다. 제자백가 사상이 대부분 사회철학이나 정치학 담론에 치우치고 있지만, 장자는 사회가 아닌 개인과 자연을 돌아보게 한다.
요즈음 세상은 사회 발전이나 안정의 논리에 따라 개인을 희생하고 자아를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 이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하려는 장자의 철학은 실존적인 삶을 성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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