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들에 관한 두권의 책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조선 선비들에 관한 두권의 책

백재선 / 전임기자

조선 선비 관련 두 책을 관심 있게 읽었다.

 

조선 선비는 사전에서 정의하는 대로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선비 상을 깨트리는 책이 계승범 교수의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와 재야사학자 김연수의 조선 지식인의 위선두 책이다.

 

이들 책은 조선 시대 선비들을 목숨이 위태로워도 왕한테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당대의 지식인으로 미화시키기보다 오히려 그들의 처신과 행동에서 드러난 비열함과 위선을 들추어내고 있다.

 

계승범은 책에서 조선 왕조의 주축 세력인 사대부들에 대해 지배 계층으로 자기들의 본연의 임무에 태만하고 책임을 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는 조선 시대 선비는 정치가로서 공자가 강조한 정치의 요체인 식량·군사·신뢰라는 세 가지 항목을 수행하는 데 모두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이 같은 실패는 조선의 선비들이 정치의 덕목을 제대로 수행하려 노력하다가 그만 시세를 잘못 만나 아쉽게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자기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한 일에 몰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 시대 사대부들은 개혁 차원에서 추진하려 했던 대동법과 균역법 시행에 딴죽을 걸었고 왜란과 호란의 국난 상황에서 솔선수범해야 하는 군 복무나 군포 납부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저자는 유교에서 수신의 덕목으로 내세우고 있는 지조와 의리, 청빈과 안빈낙도, 공에서는 후사와 극기복례라는 기준으로 조선 선비들을 살펴볼 때도 조선 시대에 진정한 의미의 선비로 일생을 살아간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수신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현 불가능한 이론으로 무장한 선비들이 500년간 권력을 독점한 결과, 조선은 철저한 인간차별의 나라,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전혀 없는 남성 양반만을 위한 나라, 작당을 일삼은 소인배의 나라, 가난에 찌든 나라, 영원한 모화(慕華)의 나라로 바뀌고 말았다.

 

조선 선비들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남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소통 부재라는 병폐는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조선 시대 장기간에 걸친 당쟁은 조선의 최고 지식인 유학자들 간의 소통 부재에서 비롯되었으며, 오늘날 정치권의 극렬한 대립과 갈등도 정치 지도자들 간의 소통과 타협 부재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선비 평가에 대한 아무런 기준도 없이 어느 특정 일면만을 크게 부각해 편협하고도 일방적으로 선비를 추켜세우는 평가가 난무하기에 균형을 잡기 위해 집필했다면서 조선 왕조를 주도한 양반 사대부에 대한 냉정한 평가 작업이 부실하다면 우리는 역사에서 배울 것도 없고, 현재 사회에 대한 다양한 평가에도 서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조선 선비에 대한 김연수의 평가도 역시 부정적이다.

 

김연수는 책에서 조선 사대부들이 숭상한 유교와 성리학은 치국평천하의 사명을 강조하지만, 그들은 국정 책임을 지닌 사람들로 본질에 충실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권 옹호에만 매달렸다고 비판한다.

 

특히 16세기 정권을 장악한 사림파 유학자들은 에 입각한 도덕 정치에 목소리에 높였지만, 당파 싸움에 빠져 치국이나 부국강병을 아예 도외시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조선 명종·선조 때 성리학 대가로 후세에 이름을 떨친 이황·이이·기대승·정철 같은 士林 유학자들에게도 비난의 칼을 세운다.

 

이들은 오직 관념적 철학자 주자에 의존하면서 개혁적인 시책 도입에 사사건건 반대하고 자신들의 사회적·경제적 이해 옹호를 위해 출사와 은둔을 되풀이하면서 당파 색을 강화했다.

 

신진 사림이 점차 득세하면서 조선 왕조 창업 당시 부국강병과 국리민복의 실용적 정치사상은 오히려 폐기되고 주자학의 명분과 의리를 중심으로 한 관념적인 이데올로기 중심의 정치로 전환이 이뤄졌다.

 

저자는 신진 사대부들이 주자학의 울타리 안에 갇혀 절의와 예의를 중시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국가 경영에 실패함으로써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민족사의 대 참화를 겪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조선 시대 신진 사림들의 부정적인 유산은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 세상을 적과 동지, 정의와 불의, 정파와 사파로 양분하고 명쾌한 논리로 상대를 공격하는 데에만 몰두한 나머지 실용보다는 명분, 각론보다는 총론, 현실보다는 이미지에 의존했던 조선 유림의 모습과 행태들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역사를 뒤집어 보면 한 시대를 경영한 정치인의 책임보다는 시대정신을 이끌어 간 지식인의 책임이 더욱 무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서 역사적으로 지식인의 영향력이 장기간에 걸쳐 미친다는 점을 감안해볼 떼 조선 역사의 커다란 변곡점에 섰던 이황과 이이 등 신진 사림들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한다.

 

계승범과 김연수의 책은 역사에 있어 지식인의 역할과 평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한다.

 

지식인의 말과 글은 역사 속에서 후세에 면면히 이어지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지식인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당대의 시대정신 실현을 위한 그의 실천적인 행동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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