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철학의 비판』(리쩌허우)을 읽고

백재선 기자의 책읽기 산책

『비판철학의 비판』(리쩌허우)을 읽고

백재선 / 전임기자

중국 당대의 최고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리쩌허우가 쓴 칸트의 비판서에 관한 책이다. 리쩌허우는 대학 졸업 후 약관의 나이에 당대 실천 미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주목을 받았지만,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학문적 암흑기를 겪었다.

 

그는 암흑시대에 남몰래 칸트의 저작을 읽고 틈틈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마오쩌둥의 시대가 막을 내린 1976년 초고를 완성하고 1979년에야 『비판철학의 비판』 책을 발간했다.

 

책은 그동안 여러 차례 개정 작업이 이뤄져 초고 완성 시점 30주년이 되는 2006년에 수정 6판이 나왔다.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피경훈 교수에 의해 2017년에 완역판이 발간됐다. 국내 판은 리쩌허우 교수의 원고뿐만 아니라 그의 대담집과 함께 심광현․임춘성 교수의 해설집까지 실려 있어 리쩌허우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읽을 수 있다.

 

리쩌허우는 초판 서문에서 “중국 내에서 오랜 기간 동안 칸트를 연구한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책은 칸트 철학의 배경 및 흐름과 함께 3대 비판서 체계인 인식론ㆍ윤리학ㆍ미학의 관점에서 칸트 철학을 소개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리쩌허우는 평소 지론대로 쉽고 간명하게 책을 기술해 칸트를 제대로 읽지 못한 독자들에게 칸트 철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리쩌허우의 책을 통해 칸트가 서양 철학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을 더욱 파악할 수 있었고 칸트가 제시한 철학적 개념들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리쩌허우는 독일 관념 철학의 두 거두인 칸트와 헤겔을 비교하면서 칸트가 인류학적 관점에서 각도에서 보편성과 이상성을 추구한 것이, 특수하고 현실적인 것을 강조하는 헤겔의 반 보편성적인 관점보다 더욱 장구한 생명력을 지닌다고 평가했다.

 

리쩌허우는 단순히 칸트 철학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칸트와 마르크스를 결합해 자신의 철학인 역사본체론을 강조했다. 리쩌허우는 초판 서문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대해 품고 있던 열정과 관심이 책을 쓰게 된 동력이 되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리쩌허우는 도구-사회 구조(마르크스)와 문화-심리구조(칸트)의 결합을 주장하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칸트 철학의 보완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이와 관련해 칸트는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기초가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이라고 이해했고 인민의 집단적 역량은 역사에 따라 변화하면서도 독특한 생존방식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았다고 리쩌허우는 해석했다.


리쩌허우는 자신의 역사본체론을 통해 도구 본체가 마르크스를 계승해 중국 전통과 결합되어 실용이성을, 심리본체는 하이데거를 수용해 중국전통과 접목되어 낙감문화를 만들어 냈다고 주창했다


리쩌허우는 도구본체의 각도에서 중국인의 실용이성을 말하고 심리본체의 각도에서 중국전통의 낙감문화를 제창했으며, 최종적인 심리구조의 건립을 심미적 생활 방식과 태도, 즉 지금 여기의 삶에 대한 자유로운 향수로 귀결시켰다.

 

이에 대해 성광현 교수는 “리쩌허우는 칸트가 선험적 능력이라고 말한 지성, 판단력, 이성은 실제로 역사 속에서 축적된 인류의 주체적 능력이 개인적 자아에서 계승된 것이라고 보면서 인류의 주체적 능력을 도구-사회 구조라는 객관적 측면과 문화-심리구조라는 주관적 측면의 결합체로 재해석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리쩌허우의 역사본체론에 대해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중국 전통 사상을 서양철학의 틀에 끼워 무리하게 맞추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일부 제기되고 있지만 리쩌허우는 원래부터 中體西用이 아닌 서양을 바탕으로 중국을 활용하자는 西體中用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중국내 좌파들은 혁명이 아닌 개혁을 중시하는 리쩌허우를 비판하지만 리쩌허우는 오래전부터 계몽에 의한 점진적인 개혁을 주장해왔다.

 

리쩌허우는 자신의 철학에 대해 구축의 철학을 견지하고 계몽 이성을 계승하는데 있다고 강조하고 형이상학적 사변보다 일상적인 삶에서 진리를 추구하고 물질생활을 중시해왔다.


그의 이러한 사고는 밥 먹는 철학이라는 말로 집약된다. 리쩌허우는 “생명은 무엇보다 인간의 물질생활, 즉 의식주의 일상생활을 말하며, 인간은 반드시 물질적 생명을 갖추어야 비로소 정신적 생명과 영혼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비판철학의 비판』은 칸트 철학의 입문서이자 리쩌허우 사상의 핵심서로 일컬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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