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시험에 관하여 (2)
물론 1년이라는 시간은 길다. 1년 동안에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해 낼 수 있다. 1년 동안의 시간여유를 갖고 공부를 시작하는 수업생들에게 당장은 시간 여유가 있어 보인다.
정말 그럴까? 대부분의 공인중개사 수험생들은 시험에만 전념하기 어려운 환경일 가능성이 높다. 직장엘 다닌다든지, 하다 못해 부업이라도 해야 하든지, 아니면 가정에서 육아를 해야 한다든지, 육아가 아니더라도 살림을, 이도 저도 아니면 연애를 해야 한다든지. 이들은 대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중고등 학생과 같은 환경이 아니다.
1년이라는 길이는 길어 보이지만,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가용시간을 측정해보면, 의외로 공부할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낮에는 탄천을 산책할만큼의 어느 정도 시간여유가 있었지만, 일을 해야 하는 오후부터는 잠자리에 들 때까지 시간이라는 것을 도통 만들기 힘들었다. 그나마 내 경우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술을 좋아하는 경우라면, 글쎄? 정말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1년 중에 얼마나 될까?
길게만 보이는 1년이라는 기간은, 자칫 준비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의 낭비로 이끄는 유인이 되기 쉽다. 주머니 속에 사탕이 불룩해서 마구 마구 나눠주다 보니 어느 순간에 사탕이 몇 개 남지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 공인중개사 시험은 시간여유가 많을 수록 합격이 더 쉽지 않은 시험일 수도 있다. 부족한 시간을 자각하기 어렵기 때문. 짧은 기간, 부족한 시간으로 준비한 수험생들 중 합격사례가 많은 것은 부족함의 자각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그리 생각이 든다.
공부를 결심하고 기본서를 세트로 준비한다. 보통은 기본개념서이다. 기본개념서는 대개 책이 두껍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이들은 좀 부담스럽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다. 기본서가 끝나면 핵심교재, 이것을 마치면 마무리 교재 등으로 공부를 해나가게 될 것이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많은 양을 꼼꼼히 공부해서 합격하는 시험이 아니다. 작은 교재, 빠른 학습이 합격의 지름길 !!!
내가 공부했던 것은 정 반대였다. 4월에서 10월, 시간도 짧지만, 하루 중에 공부할 시간의 양도 별반 없었다. 부족한 시간이 오히려 합격을 만들어낼 것이라 확신했다. 두 권의 교재를 샀다. 박문각에서 출판한 핵심요약집이었다. 1차 한권, 2차 한권, 책값 두 권 합해서 5만2천원, 동네서점에서 10퍼센트 할인 받아서 4만6800원.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교재에 투자했던 전부이다.
충분하다고? 넘치게 합격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쨋든 합격하기에는 충분하다는 판단이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시험을 치뤄왔다. 그 시험의 대부분은 상대평가다. 석차가 정해지는 학교 시험이 그렇고, 대학의 당락을 결정하는 수능시험도 그렇다. 입사시험, 공무원 시험, 상대평가가 아닌 것이 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상대평가의 시험에 너무 익숙해 있다. 공인중개사 시험이 절대평가인 것을 알지만, 이미 상대평가에 길들여진 내 뇌는 절대평가 방식의 공부에 저절로 거부감을 표출한다.
많이 알아야 한다. 꼼꼼히 개념을 익혀야 한다. 처음부터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이런 말들이야말로 상대평가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뇌가 우리를 꼬득이는 말들이다. 공부의 과정을 어렵게 하고, 길게 하고, 결국 1년이라는 시간을 대충 써버리게 만들고, 급기야는 9월, 10에 이르러 주머니 속의 사탕이 몇 개 남지 않은 것을 알도록 만드는 그럴듯한 속삭임이다. 우리는 이런 속삭임을 경계해야 한다.
핵심요약집의 최대 장점은 빨리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장점은 시험에 정말 자주 나오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핵심요약집을 충분히 알 때, 수험생이 맞출 수 있는 모의평가나 실전평가는 어느 정도일까? 내 판단에는 이 역시 60, 40이 아닐까 생각된다. 공법 이외의 과목은 60점, 공법은 40 점, 나머지는 적당히 혹은 연필 굴려서.
합격하기에 얼마나 충분한 점수인가? 60점은 내가 맞추고, 나머지는 연필을 굴려 맞출 수 있는 짧은 양의 교재라니, 이 또한 얼마나 훌륭한 교재인가?
방법을 바꾸어, 기본개념을 탄탄히 하기 위해 개념서를 두 세 달에 걸쳐 공부한다 가정해본다. 개념서를 한 바퀴 돌 때까지, 처음 공부했던 내용이 내 머리에 온전히 남아 있을까? 게다가 자주 반복되지 않는 세밀한 부분이라면, 언제 또 그 부분을 다시 공부해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까? 그럴 기회가 오기라도 할까? 기본개념을 탄탄히 하는 것은 학문하는 태도로서 옳은 일이지만, 절대평가의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는? 글쎄? 라는게 내 판단이다.
많은 것을 공부하고 점차 양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적고 자주 반복되는 것을 확실하고 공부한 다음 점차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 적어도 공인중개사 시험에서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많이 맞추려 하지 말고, 빨리 맞출 수 있는 것들을 확실하게 맞추면서 시작하는 것.
즉, 여기까지의 공부방법을 요약하면 이렇다.
"작은 교재로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주기적인 모의고사를 통해, 합격권에 근접하는 점수를 최대한 빨리 확보한 다음, 점차 범위를 늘려 점수를 안정화시킨다."
시험일자가 가까울 수록 시간은 훨씬 빨리 지나간다. 앗차! 내가 지금까지 뭘 한거지? 이렇게 되기 쉽상. 꼼꼼하게 공부하면 나중에 합격점수가 충분히 되겠지 하는 것은 허상! 두 달 안에 합격권 점수에 근접시킨다는 생각으로 교재와 공부방식을 찾는다면, 어떤 교재를 써야 할 지, 어떤 방식으로 공부해야 할 지 저절로 판단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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