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과 연변 여행(4) - 에필로그

백재선 기자의 여행길 이야기

백두산과 연변 여행(4) - 에필로그

백재선 / 전임기자

 

 

3박 4일 마지막 날 귀국하기에 앞서 연길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은 3층 현대식 건물로 시설이 깔끔해 보였다.

 

 

 

 

 

1층은 연변조선족자치주 70주년 기념실, 2층은 조선족 민족 전시실, 3층은 연변지역 출토물 전시실과 혁명투쟁사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3층 연변지역 출토물 전시실로 올라갔으나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었다. 선사 시대부터 연변지역에서 출토된 토기와 장식물 등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고구려 시대 유물은 찾아볼 수 없고 당‧발해‧원‧명‧청 시대 유물만 볼 수 있었다.

 

발해에 대해 “말갈족 수장인 대조영이 건설한 나라이며 당나라의 제후국이었다”라고 소개하고 있어 고구려와 전혀 연결 짓지 않고 중국 역사에 포함시키고 있었다. 중국의 동북 공정 방침에 의해 발해사를 기술하고 있어 불편하게 다가왔다.

 

3층 혁명투쟁사 전시실에는 조선족의 이주 역사에 관해 소개하고 있다. 조선족 이주 역사를 크게 농사를 위한 이주, 항일운동을 위한 이주, 일본 만주국의 강제 이주 등 3기로 구분했다.

 

함경도 지역에 살던 우리 선조들은 19세기부터 연변지역으로 이주해 농사를 지었다. 이주 조선인들은 연변지역에서 처음으로 벼재배에 성공을 거두면서 북쪽 지역으로 본격 전파하기 시작했다. 특히 용정지역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관개공사를 통해 수전을 개간해 쌀농사를 크게 늘려 물산을 일으켰다.

 

 

 

 

 

일본의 조선 침탈이 본격화되면서 일제 탄압을 피해 한반도 각지에서 연변으로 이주하는 인구가 늘었다. 이주 조선인들은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이를 거점으로 삼아 항일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항일운동을 위한 이주 시기 코너에는 우리에게 낯익은 독립운동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상설은 1906년 용정에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창립했다. 김약연은 1910년 명동 학교를 설립한 데 이어 1913년 한인 자치 기구인 간민회를 구성했다.


 

 

 

 

일제가 조선과 만주 침략을 노골화하자 연변지역 조선인들은 무장 투쟁에 나섰다. 전시실 한쪽 코너에는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모습이 밀랍 모형으로 꾸며져 있었다.


 

 

 

 

일제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패전 이후 독립군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러한 일제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김좌진․안창호․백광운은 상해임시정부와 협력하여 연변지역에서 신민부․정의부․참의부 등 항일 무장단체를 각각 설립하여 일제와 맞서 싸웠다.

 

1928년에는 중국 동북 지역의 18개 좌우 진영의 반일 단체가 민족유일당을 조직하는 민족연합을 도모하기도 했다.


 

 

 

 

전시실 한쪽에는 김두봉․김원봉․김산․정율성 등 공산․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활약도 소개하고 있었다.

 

이들 독립운동가는 당시 자신들의 사상과 관련 없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누구보다도 일제와 치열하게 싸웠다. 후손들이 지금에 와서 현재의 기준으로 이들을 좌파라고 재단하면서 독립운동에 대한 그들의 헌신을 폄하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조선인들의 중국 공산당 가입과 함께 항일 유격대원들의 활약에 관한 이야기도 소개된다. 우리에게 아픈 이야기이지만 중국 공산당 일원이 된 조선인들은 나중에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으로 중공군에 편입되어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었다. 당시 연변 이주 조선인들 상당수가 한국 전쟁 당시 중공군 일원으로 참여했다.

 

3층에서 내려와 2층 조선족 민족 전시실로 갔다. 전시실은 조선 이주민들이 민족의 풍속과 관습을 잃지 않고 유지해온 모습을 보여준다. 의복, 예식, 음식, 도구 사용에 있어 조선 고유의 전통을 보전함으로써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데 노력해왔다.


 

 

 

 

1층은 2022년 연변조선선자치주 7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공간이다. 1층 홀 중앙에는 시진핑 주석이 연변 자치주 주민들과 함께하는 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 



자치주의 현재와 미래를 소개하고 있지만 특기할 만한 것은 없었다. 기념실 입구에 우리말로 소개된 머리말이 오히려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연변은 당의 영도 아래 민족구역자치제도를 견지 보완하면서 조국, 중화민족, 중국공산당, 중국특색사회주의에 대한 확신을 굳게 하고 공동 번영발전을 도모해왔다. 연변은 시진핑 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의 위대한 길을 따라 중화민족공동체의식을 확고히 하여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 꿈을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성취를 이루고 새로운 기여를 하자.”

 

글을 읽고 나니 연변조선족자치주와 조선족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족은 중국 내 소수 민족으로 중화민족과 보조를 같이해야 한다. 지금은 조선족이 형식적으로나마 자치주 정부를 운영하고 있지만, 미래에도 가능할까 걱정이 앞선다.


 

 

 

 

1952년 연변조선자치구 설립 당시만 해도 총인구 중 조선족 비율이 62%에 달했으나 2020년 기준으로 연변조선족차지주 인구 194만명 중 조선족은 59만7천 명으로 3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치주 내 농업․광업․관광 말고 이렇다 할 내세울 만한 산업이 없다 보니 한국이나 중국의 다른 지역으로 조선족의 이탈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최근 국내 언론 보도를 보니 국내에 들어와 일하는 조선족 인구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젊은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차별과 무시를 당하고 일하기보다 중국 대도시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접하다 보니 평소 연변 출신 조선족에 가졌던 우리 내부의 편견과 무관심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조선족들이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 노골적이고 결정적인 순간에 중국인으로 자처하는 모습들을 보고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쉽게 비난한다. 


중국 내에서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야 하고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 사회에도 제대로 편입되지 못하는 처지를 생각해볼 때 이들의 이중성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 사람들이 그들을 소수 민족의 하나로 조선족이라고 부를지라도 우리는 조선족이 아니라 같은 핏줄의 동포로 불러야 한다.

 

연길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면서 그동안 잊어버렸던 연변의 옛 지명인 간도(間島) 지역에 대해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도는 두만강과 압록강 너머 북쪽 만주 일대 지역으로 고구려와 발해 시대 우리의 옛 영토였다. 청나라가 17세기 간도 일대를 발상지로 구분하여 봉금 조처를 했지만, 우리 선조들은 두만강 이북 지역 현재의 연변 지역인 북간도에 꾸준히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다.

 

 

 

 

 

18세기 간도 땅을 놓고 조선과 청나라 간의 영토 분쟁이 빚어졌지만, 우리 선조들은 19세기 중엽부터 꾸준히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이주해와 농토를 일구면서 간도 땅을 실제로 점유해욌다.

 

일제는 1909년 한일합방에 앞서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체결해 만주에 대한 권익을 확보한 대신 간도 영유권을 포기하고 간도 땅을 청나라에 귀속시키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주 조선인들은 간도 일대에 학교와 교회를 세워 애국 계몽과 항일 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을 모았다. 이러한 민족적 기반으로 인해 간도는 일제 강점기 시대 가장 활발한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독립운동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무력 항일투쟁으로 평가받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과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는 간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 독립군의 승리는 이주 조선인들의 일치단결된 힘을 보여준 것이다.

 

간도는 근대 한국 민족의 애환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다. 간도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민족의 맥을 이어온 또 하나의 조선이었다.

 

비록 간도가 현재 중국 땅이지만 우리 역사를 간직한 고토(古土)로 늘 기억하고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을 우리 동포로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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