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19 코스(조천 - 김녕)

백재선 기자의 여행길 이야기

제주 올레 19 코스(조천 - 김녕)

백재선 / 전임기자

올레길 19코스는 조천만세동산에서부터 시작한다.


올레길은 『만세동산광장』을 경유한다. 『만세동상광장』에는 『조천항일운동기념탑』과 『애국선열추모탑』이 우뚝 서 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조천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항일 시위가 일어나 제주지역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기념탑을 돌아 오른쪽으로 걸어가니 항일운동기념관과 제주 출신 항일독립 유공 지사의 위패를 모신 창열사가 자리 잡고 있다. 조천만세동산은 현재 성역화 공원으로 조성 중이다.


천안에 중앙정부에서 설립한 독립기념관이 있지만, 제주처럼 지방에서도 항일운동기념관을 대규모로 조성한 곳은 이야기 들은 바 없다. 세화에서도 제주 해녀 항일 기념탑을 볼 수 있었는데 제주 사람들은 어느 지역보다 역사에 자긍심이 높은 것 같다.

 

 




민족 자존심이 드센 제주도 사람들이 해방 후 4.3 당시 빨갱이들로 매도되어 미군정과 군경에 의해 극심한 탄압을 받은 것은 역사의 비극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올레길은 공원을 빠져나와 해안으로 향한다. 해안가 들판 쪽으로 보리싹이 익어 노란색을 띠고 있다. 멀리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이 배경이 되어 노란 들판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들판 한쪽에는 양파와 호박, 대파밭이 어우러져 있다.

 

 




종려나무도 보였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제주에 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남국풍의 종려나무였다. 관심이 줄어선 인지 몰라도 제주에서 이제 종려나무를 보기가 쉽지 않다.

 

 




올레길은 해안 도로로 이어진다. 햇빛이 점차 따가워지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덜 더웠다. 해안 도로에 불쑥 튀어나온 지역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안내석을 보니 『관곶』이라고 한다.

 

 




조천포구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곳이 한반도의 끝인 해남 땅끝마을과 가장 가깝다고 한다. 내 고향인 해남과 가깝다는 말에 전망대 위로 올라가서 바라보니 육지 땅은 보이지 않고 바다 위에 있는 조그마한 섬만 보였다. 한반도 땅끝까지 거리는 83㎞로 자동차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올레길은 해안가 차도가 아닌 들판 길로 연결된다. 들판 한가운데 올레 리본을 단 안내봉이 바위틈에 꽂혀 있는데 바람 때문에 휘어져 있었다. 이곳에서도 환해장성을 볼 수 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장성이 높지 않고 무너진 대로 방치해놓고 있어 복원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올레길은 신흥리 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신흥리 해수욕장은 마을 쪽으로 오목하게 들어앉아 넓은 백사장을 이루고 있다. 깨끗한 바닷물이 하얀 백사장을 만나 옥색의 색깔을 빚어내고 있다.


해수욕장 가장자리에는 검은색 현무암 바위들이 깔려 있고 바다 한가운데도 검은 돌탑 2개를 볼 수 있다. 검은 돌탑은 방사탑이다. 방사탑은 마을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내기 위해 바다 위에 세운 탑이다.

 

 




신흥 해수욕장 입구에서 해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전복 물회를 주문했는데 딱딱해 먹기가 불편하다. 한치 물회와 전복 물회만 있고 다른 생선이 섞인 물회는 메뉴에 없다. 해녀들이 잡아 온 해산물로만 물회를 만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짐작할 뿐이다.


점심을 먹고 신흥리 포구와 마을을 지나니 여기저기 용천수 관련 시설을 볼 수 있다. 신흥리는 용천수가 풍부한 지역이다. 바닷가에 용천수 목욕탕을, 민가에 용천수 식수터를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올레길은 함덕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함덕해수욕장은 신흥해수욕장보다 훨씬 크고 편의시설이 밀집되어 있다. 해수욕장 안쪽 도로변에는 대형 호텔이, 바닷가 쪽으로 연결된 모래사장 옆에는 대형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바람 때문에 물속에서 수영하는 사람은 없지만, 모래사장에 나와 걷는 사람들은 많았다.

 

 




함덕해수욕장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이지만 언제 봐도 바다 색깔이 아름답다. 백사장에 가까운 바다는 흰 모래에 반사되어 에메랄드 색깔을, 현무암 바위가 깔린 지역에는 검은빛이 반영되어 감청색을 띠고 있다. 깊은 바닷물은 짙은 푸른색이고, 하늘은 밝고 선명한 파란색이다. 그야말로 색의 향연장이다.

 

 

 

 

올레길은 함백해수욕장 동쪽에 있는 서우봉(犀牛峰)을 향했다. 함덕리와 북촌리 경계에 있는 서우봉은 2개의 봉우리가 솟아있는 원추형 화산체인데 오름 현상이 마치 바다에서 기어 나오는 소의 형상과 비슷하다고 해서 서우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서우봉으로 가는 길은 다소 경사가 있지만, 오르는 길에서 함덕해수욕장을 한눈에 내다 볼 수 있다. 위에서 보니 함덕리 바다는 역시 한두 가지 색이 아닌 여러 가지 색이 어울려져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고 있다.

 

  

 

 

 

서우봉을 계속 오르니 『서우낙조』라는 안내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함백해수욕장 바다 수평선 위로 떨어지는 낙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잠시 앉아 붉은 노을빛에 물든 아름다운 바다를 상상해봤다.

 

  




서우봉은 역사적으로 사연이 많은 곳이다. 이 지역은 고려 시대 삼별초 항쟁 때 여몽 연합군과 삼별초 군의 최후의 격전지였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일본군들이 무려 20여 개나 진지동굴을 구축해 달해 오름 중턱 여기저기에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해방 후 4·3 때에는 무고한 양민들이 이곳에 끌려와 비극적인 삶을 마쳐야 하는 슬픈 역사를 안고 있다.


올레길은 서우봉 정상을 향하지 않고 북촌리로 넘어가기 위해 비탈길로 이어진다. 올레길 옆에 서모오름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북촌마을 주민들은 이 오름을 일제 잔재인 서우봉이 아닌 서모오름, 서모봉으로 불리길 기대한다는 문구가 있다. 북촌리 사람들은 대동여지도에도 西山望, 西山峰으로 표기되었다면서 서우봉 표기에 반대하고 있다.


산 밑으로 내려오자 작은 포구와 북촌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포구는 소형 어선이 2척만 정박해 있어 정적에 잠겼다. 올레길은 『너븐숭이 4.3 기념관』을 만났다.

 

  




기념관 옆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니 애기 무덤이 나왔다. 북촌리 학살 사건 때 어른들의 시신은 다른 곳에 안장되었으나 어린아이들의 시신은 매장한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20여 기의 애기 무덤은 돌에 덮여 있어 구분하기 어렵고 돌무덤 위에는 형형색색의 바람개비와 들꽃이 무심하게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애기 무덤 맞은편 오목하게 쏙 들어간 밭(옴팡밭)은 1949년 1월 17일 북촌리 마을에서 민간이 대학살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이곳에는 『순이 삼촌 기념비』와 조각물이 있다. 붉은 피로 상징되는 송이 위에 눕혀져 있는 돌 비석들은 마치 널브러진 시신처럼 흩어져 있어 당시 희생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위령비 앞에서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올리고 다시 올레길에 나섰다. 

 

 

 

 

 

올레길은 해안가 들판 길로 계속 이어진다. 이곳 해안가도 환해장성이 담벼락처럼 듬성듬성 들어서 있다. 북촌포구가 나왔다. 북촌항은 비교적 크고 다른 포구에 비해 정박한 어선들이 많았다.

 

  




올레길 도중에 4.3 학살 현장인 『낸시빌레』가는 길 안내판이 보였다.


『낸시빌레』는 1948년 12월 16일 북촌마을 청년 24명이 당시 함덕 주둔 2연대 3대대 군인들에게 학살당한 곳이다. 당시 무장대에 협조 여부와 관계없이 군부대에 자수하면 살려준다’라는 말을 믿고 피신처에서 나왔던 청년들은 총선거에 불참했던 또 다른 이유로 이곳에서 총살을 당했다고 한다.


‘낸시’는 ‘냉이’를 뜻하는 지역어로 지금 냉이밭(낸시빌레)에는 현대식 호텔이 들어서 있어 도로 교차로에다 안내판을 세워 역사의 현장을 알려 주고 있다.

 

  




올레길은 민가를 지나 들판으로 들어간다. 들판을 지나다 보니 개간 중인 밭을 볼 수 있었다. 밭 언저리에 작업하다 캔 돌무더기가 작은 동산을 이뤘다. 황무지와 야산을 밭을 가꾸는 데에서 제주도 사람들의 억척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거의 평지지만 숲이 우거져 있다. 숲길 옆에 철조망이 길게 처져 있다. 철조망 안을 바라보니 큰 구덩이가 깊게 파헤쳐져 있다. 대규모 쓰레기 매립장 시설이 들어서 있다. 민가가 없는 들판 한가운데 쓰레기 매립장을 설치했으니 민원이 별로 나오지 않겠지만 매립장 조성을 위해 숲을 망가뜨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중간점에서 스탬프를 찍고 다시 걸으니 멀리서 보였던 풍력발전용 바람개비가 가까워지더니 제법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안내문을 보니 동복ㆍ북촌 지역에만 15개의 대형 블레이드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풍력 발전이 친환경 시설이라고 하지만 바람개비가 일으키는 소음은 그동안 숲속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동물들의 생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포장도로가 나오자 동복리를 지나 김녕리 숲길로 들어갔다. 올레 간새 안내판에 이곳은 넓은 바위가 번개에 맞아떨어진 곳이라 하여 『벌려진 동산』이라고 불린다고 쓰여 있다. 옛날에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넓은 공터에 나무가 우거져 있고 아름다운 숲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땅바닥은 검은 돌과 바위가 깔려 있어 곶자왈 지역과 비슷하다. 김녕 지역은 과거에 용암 현상이 활발했던 지역으로 만장굴과 김녕굴이 가까이 있는 점을 감안해볼 때 이 지역에서도 곶자왈 지형의 돌출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걸었던 11코스 곶자왈과 비교해 나무들이 그리 크지 않지만, 거의 평지에서 햇빛을 가려주고 있어 걷기에 좋았다.


숲길이 끝나자 들판이 나왔다. 들판에는 보리 수확을 마친 밭도 있고, 제주 북쪽 지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귤나무밭도 있다. 수확한 마늘을 밭에서 건조하는 모습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다.

 

  




큰 도로가 나오고 김녕리에 들어서자 민가를 한참 지나 마침내 19코스 종점이자 20코스 출발점인 김녕 서포구에 도착했다.

 

  

 

(2021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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